연극 <사진신부>, 한 장의 사진으로 60분을 풀어내다

초창기 미주 한인 역사를 되짚어 주었던 시간

   

· 김혜리

사진 · 뉴욕한국문화원

 


 누구나 한번쯤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얻기에도 수월해졌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면 어떠할까?

 지난 66일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기획공연 공모전의 시즌 마지막 무대로 극단 다은(대표 정다은)<사진 신부>가 올려졌다. 올해로 미주 한인 역사는 110주년을 맞이했다. 이와 맞물려 초창기 미주 한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창작극 <사진신부>의 공연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1900년대 초반 이민 사회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지금의 이민 사회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쉼표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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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에 도착한 사진신부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배우자를 만나고 있다

 

 극에서 가장 돋보였던 점은 소재의 선택과 위로였다.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러 간다는 점에서 관객들 스스로 호기심을 갖게 해주었고 또 그런 점 때문에 벌어진 상황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었다. 사진 신부들과 그녀들의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으로 극이 끝나는데 그 중 여러 명의 사진신부들이 단체로 찍힌 사진 한 장에서 극의 줄거리를 만드는 데에 특히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신부>에서는 타국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삶의 소소한 낙을 즐기는 약 1세기 전의 삶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현재의 이민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이지는 않으나 그러한 삶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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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이주 한인들의 모습을 

한국의 전통적인 가락에 덧입혀 몸동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신부>를 기획하게 된 의도와 이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더 들어보고 싶어져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 정다은씨와 극 중 영자 역할을 소화한 배우 박선혜씨를 만나보았다.

 

<사진신부>를 창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정다은 대표: 사실은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극을 쓰고 기획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신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슴에 무엇인가 맺히는 것이 있었다. 이를 소재로 삼아서 꼭 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한인 사회가 어느 정도 성공한 상태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였다. 현재 이렇게까지 일궈낸 우리나라의 처음 이민의 역사를 꼭 표현해 보고 싶었다.

   

실제로 있는 자료에 근거해서 줄거리를 만들었나?

   

정다은 대표: 박물관에 가서 한국 이민사를 둘러보기도 하고 이민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을 찾아보았다. 사진신부에 관한 세 줄로 된 영미시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사람과 다른 그를 만나다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신부들의 가슴앓이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책을 찾아보던 중 사진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 남편 될 사람을 만나자마자 울었다, 실제로 보니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아빠라고 부르던 사람도 있었다 또는 하와이에는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갔었다 등의 이런 토막토막들을 합쳐서 캐릭터를 만들고 작품을 완성했다.

   

극 중 아리랑을 들려주기 위해 아리라는 이름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인가?

 

정다은 대표: 그렇다. 세 명의 사진신부 중 한명에게 아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리의 이름에 랑을 붙여서 말하면 아리랑이 되고 자연스럽게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이름은 덕자, 영자인데 일본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들었다. 다음부터는 이 이름을 한국적인 이름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진신부>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다은 대표: <사진신부>를 창작하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있었던 문제들이 지금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동시에 그 때 있었던 문제들을 극복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절망이나 슬픔보다는 희망이 있는 연극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인들이 저렇게 어렵게 미국에서의 터전을 일궈나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연극을 보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누구든 저렇게 극복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좋겠다. 모든 관객들이 기분 좋게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었으면 한다.

 

현 시대의 여성과 실제로 연기하신 사진신부의 행동을 비교해 볼 때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배우 박선혜: 아무래도 요즘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에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그 당시에는 여자는 여자이고 남자는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 되게 강했기 때문에 여자가 앞장서서 어떤 것을 할 수가 없는 시대였다. 여자는 배울 수도 없었고 많이 갇혀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니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식의 정해진 것들이 참 많았고 늘 조심해야 했다.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배우 박선혜: 연기하는 것 자체는 늘 즐거웠다. 한국이 아니라 뉴욕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힘든 건 환경이었다. 이곳에서는 배우라는 것만 갖고는 신분 유지도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일을 꼭 해야만 한다. 극 중 ‘we can be rich’라는 대사를 함께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큰 공감대를 느꼈다. 뉴욕으로 오는 많은 사람들은 유학이든 이민이든 어떠한 꿈을 가지고 오는데 막상 현실과 부딪치며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출연했던 모든 배우들이 뉴욕에서 살면서 이런 것들을 느낀다. 실제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기도 해서 연기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미주 한인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와 참 잘 어울린다. 초창기와 비교했을 때 100년이 더 넘은 세월이 지났다고 해도 그 때 있었던 문제들이 지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극단의 대표 정다은씨가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일궈낸 것들을 보며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며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앞으로 200주년, 300주년을 멋지게 기념하게 될 한인들의 이민 역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