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레랑 연애 중이예요

 

글 : 김예나

사진 : 롯데백화점 제공

 

 

발레랑 연애랑 똑같아요. 어느 날은 발레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랑이 불타올랐다가 어느 날은 너무 싫어서 훌쩍 떠나고 싶은 것! 그게 바로 발레인 것 같아요.” 서희와 인터뷰 중 나온 이야기이다. 파리 오페라발레단, 영국 로얄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 이하 ABT ) 솔리스트가 된 25살의 당찬 발레리나. 그녀를 만난 느낌은 매우 똑똑하다!!였다. 가녀린 몸에 눈부실 정도의 예쁜 얼굴을 가지고 매우 조리 있게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은 모습이 서양의 문화 발레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들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 공부하고 공부했을지 느껴졌다. 그녀의 몸짓 하나로 세계인을 매혹시킨 아름다운 발레리나 서희, 그녀를 만나보았다.

 

 

 관객과 교감하는 무용수가 되고싶다.

 

 photo2.jpg<지젤> <백조의 호수>와 더불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발레 중 하나이다. 발레리나라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품 <지젤>을 끝마친 소감이 어떠한가?

: 또 또 빨리 했으면 좋겠다. 사실 <지젤>은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에게 <지젤>이라는 작품이 떨어졌을 때 “<지젤> 특별 한 거 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젤>을 배우기 시작하자 ABT스타일로 다시 배워야 했고,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춤이 예상외로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공연을 하면서 한번도 집중해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지젤>이란 작품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고 공연을 끝내고 나니 다시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


심각한 부상이 있었다고 했다. 긴 시즌 공연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ABT는 총 8주 동안  64회의 공연을 올린다) 연습하는 과정에 있어서 힘들지 않았나?

: 전혀 연습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 보다 부상이 심해서(발목 인대 파열) 이번 시즌을 할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재활을 하면서 부상당한 곳을 제외하고 꾸준히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무용수에겐 재활 이후 다

시 몸을 만들어가는 기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를 조금 줄일 수 있었던 것 같.

 

● ABT에는 어떻게 입단하게 되었나? 독일 존 크랑코 발레 학교(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산하기관)에서도 교육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하는 것이 아니었나?

: 독일 존 크랑코 발레 학교에 있으면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공연도 같이 했었다. 그래서 나 또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계속 머물게 될 줄 알았다. 어느 날 ABT에서 입단 하겠냐는 연락이 왔을 때 매우 고민이 되었다. 부모님과 고민하던 중 아버지께서 뉴욕으로 가라고 하셨다. 뉴욕은 큰 도시이고 경제, 정치, 업 등 모든 것이 발전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예술 또한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다며 추천해 주셨다. 제일 크게 작용했던 것은 ABT는 다양한 클래식 작품이 많은 컴퍼니라는 점 이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클래식 발레, 전막 발레를 많이 하고 싶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역시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클래식 발레 보단 모던 발레가 위주였기 때문에 ABT를 선택하게 되었다.

 

●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앞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 너무 많다. 못해 본 게 더 많다. 클래식 발레 중에선 <백조의 호수>를 가장 해보고 싶다. 갈라 형식이 아닌 전막 발레로 백조와 흑조의 두 모습을 모두 연기해 보고 싶다. 드라마 발레 중에선 <까멜리아 레이디(Lady of Camelias)> 또한 해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다. 리허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쇼팽 음악과 안무가 너무 아름답게 맞아떨어진다.

 

 

나의 춤에 만족하는 그 순간 한국에서 춤추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솔리스트 이다. 동양인으로써 서양의 문화인 발레에서 크게 성장하기 힘들었을 텐데 자신만이 가진 무기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렵다. 항상 물어볼 때 마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우선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언어적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레가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지만 그 안에서 충분히 파트너와 교감이 있어야 하고 발레단안에서의 사회생활이 필요로 했다. 만약 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면 쉽게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이 크게 없었기 때문에 우선은 이곳에서 서바이벌 (Survival)이 가능했던 것 같다.

 

● 한국에서 백화점 모델로 활동 중이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 광고가 방송에 나간 뒤 한국에 들어가지 않아서 직접적으로 느끼는 인기는 없다. 사실 많이 부끄럽다. 대 위에서 모두가 나를 바라봐주는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데 무대가 아닌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게 아직 너무 부끄럽다. 하지만 광고를 보고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이 SNS(트위터, 페이스북 등)를 통해 연락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서 그 점은 좋은 것 같다.

 

●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을 떠나서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이 가장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 한국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 워싱턴에서 유학할 당시에는 전혀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발레를 배우고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발레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끔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난데없이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고 엄마의 편지를 받을 때면 눈물이 왈칵 쏟아 질 때 한국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러나 아직은 이곳에 남아 배울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내가 큰 발레단을 결정한 이유도 지금 내 실력에 맞춰서 춤을 출수 있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실력을 키워서 내가 만족하는 실력이 되었을 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 인생의 멘토가 있는가?

: 부모님이다. 나는 가끔 극성적인 부모님, 발레에 관심이 많으신 부모님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언제나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조금 더 편안한 상황에서 발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달랐다. 발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셨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우리 부모님의 최고의 장점이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모든 것이 다 발레, 일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집에 가면 내가 발레리나 서희가 아닌 보통 평범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기분이 우울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주신다. 아빠는 방향을 제시하시는 스타일이고 엄마는 무조건 나의 편을 들어주신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언제나 내편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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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 서희에게 있어서 뉴욕은 어떤 곳인가?

: 집이다. 발레단 단장님 (Kevin Makenzie)께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그때 단장님께서 당연하지! 너는 우리 가족이잖아라고 말씀해 주셨다. 바로 그때 이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들어와서 3년간은 발레단에 정 붙이기가 힘들었다. 용수들이 워낙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연륜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서 쉽게 친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실력도 인정받게 되고 인간적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되자 더욱 편안한 장소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단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나를 이곳을 집으로 만들었다.

 

● 뉴욕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 MOMA(Museum of Modern Art) Metropolitan Museum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영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영감을 가장 받을 수 있는 곳이 MOMA MET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무대에 오르기 전에 ~ 이 춤을 또 춰야 하나?”하며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분명 무대에 올라가면 열심히 한다) 그럴 때 일수록 이런 곳에 들러서 새로운 영감으로, 다른 세계의 예술을 보고 충전하면서 나를 다시 다듬어 갈 수 있었다. 뉴욕은 이러한 면에서 매우 멋진 곳이다. 쉽게 다른 예술을 접할 수 있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매력적  도시인 것 같다.

 

● 서희의 최종 꿈은?

: 최종 꿈이라기 보단 해보고 싶은 일은 있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오지체험도 해 보고 싶고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 주변에선 내가 오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냐고 웃곤 하지만 그래도 직접 몸으로 남을 위해 도와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크게 도움은 안되겠지만 가서 발레를 가르치거나 같이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잠깐의 기쁨이 된다면 나에겐 세상을 얻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