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기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설치와 기림길 조성 관련, 플러싱 시의원 Peter Koo와의 인터뷰 기사

 

 

 

글 윤혜수

사진 문화PD 김예슬

 

 

뉴욕시의 플러싱에 일본군 위안부의 기림비와 기림길이 생길 예정이다. 플러싱 시의원인 Peter Koo는 유니온스트릿과 노던블러바드 교차로 서쪽 중간의 보행자 광장에 기림비를 설치하고, 유니온스트릿을 Comfort Women Memorial Way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길은 한인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위치해있으며, 거리미화사업과 동반하여 진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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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설치될 보행자 도로와 기림길로 지정될 유니온스트릿

 

일본군 위안부(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Comfort women)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일컫는다. 일본은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점령지에 대한 학살 및 강간 행위에 대한 국제적 힐난을 피하기 위하여 군 위안부 제도를 설립하였다. 위안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동원되었으나, 식민지였던 한국인 위안부가 대다수를 이루었다. 위안부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씩 성행위를 강요당했으며, 이들의 생활 공간이었던 위안소는 기본적인 위생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금전적 대가가 있었다고는 하나, 실제로 위안부들에게 돌아간 경우는 극히 적었고, 위안부들은 군에 의한 잦은 폭력과 살해의 위험을 늘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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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수요집회를 열어온 정대협, 첫 수요집회 당시의 모습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이와 같이 심각한 인권 유린에 해당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내외적으로 이슈화하고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금전적 보상을 하기 위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집회를 열어 왔다. 본 수요집회는 오랜 기간 사회로부터 외면 당했으나, 점차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얻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20072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 위안부(성노예)존재를 인정하고 공식사과 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미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바 있으며, 이 밖에도 네덜란드 하원과 캐나다, 유럽의회, 그리고 필리핀에서 차례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또한 2008UN인권이사회에서도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정부차원에서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등 국제적 압력을 더했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뉴저지의 펠리사이드파크 파크와 뉴욕의 낫소카운티, 두 곳에 위안부 기림비가 설립된 상태이다. 이에 더해 플러싱의 기림비가 설립된다면 미국에만 총 세 개의 위안부 기림비가 생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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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하는 플러싱 시의원 Peter Koo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Peter Koo 의원 역시 본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뉴욕한인회의 노력으로 처음 위안부 문제를 접했고,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만남행사에 참석하면서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내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설치하면서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일본의 방해공작이었다. Peter Koo의원 역시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일본 국민들로부터 수 백 통의 항의 메일과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정부차원에서도 기림비 철거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시도했으나, 이는 모두 내정간섭으로, 기림비 설립 사업을 추진하는데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의 뻔뻔한 태도가 다시 한 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인권 옹호자들의 격렬한 반발심을 키웠다.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대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큰 차원에서의 인권 문제로 접근하지 못하고 자기 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경우라고 하겠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단기적 처사는 지난 세월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양심 있는 일본 지식인과 아시아 여성 기금과 같은 민간 단체들의 노력을 단숨에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이들이 지난 몇 년간 분명히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는 일본이 식민지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왜곡된 인식이 팽배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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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부터의 항의 편지를 보여주는 피터구의원의 조은실 보좌관

 

미국에 잇따라 설립되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의 목적과 의의는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로 국한 될 것이 아니라, Peter Koo의원의 말과 같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후대에 교육하여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술을 들으며 일본군 위안부가 비단 한국과 일본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역사에 대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군위안부 제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쟁 중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한 바 있으며, 이러한 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문제로 국한시켰을 때 조명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렌즈를 조금 더 넓히자는 것은 일본의 과거에 대한 잘못을 축소시키거나 그들의 정부 차원의 주장을 용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였던 누적된 역사 속에서, 부끄러운 과거의 경험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기억하고 교육함으로써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홀로코스트와 나치의 잔인함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에 반해, 아시아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참상이나 대학살은 그 규모와 무관하게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 대해 Peter Koo의원에게 의견을 묻자 부끄러운 과거를 파헤치고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 서구 국가들과 달리 일본을 포함하여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언급하는 것을 아직까지는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 까닭이라고 답했다. Peter Koo의원과 공유했던 의미 있는 문제의식이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와 기림길을 통해 플러싱 내 지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확산, 전달되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