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아유 레디>, 전 세계에 ‘아리랑’을 전파하다.

글. 이원지

 

<코리아 아유(아리랑 유랑단) 레디>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세계에 알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판소리(신유진, 21), 대금(임정민, 23), 장구(김동국, 26), 서예(이정화, 23), 영상(박준영, 28), 관광 (문현우 팀장, 27)을 전공하는 젊은이 6명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2011년 6월 중국은 한국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을 포함한 판소리, 가야금, 씨름 등이 소수민족인 조선족 전통 풍습이라며 중국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아리랑을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한국의 문화재청은 아리랑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12년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가 확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코리아 아유 레디> 팀은 전세계에 아리랑이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임을 알리기 위해 2013년 3월 1일부터 2013년 6월 25일까지 117일 동안 5대륙 15개국을 순방하며 아리랑의 정통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코리아 아유 레디>팀은 뉴욕 일정으로 한국 교육시스템을 모델로 삼고 있는 할렘에 소재한 Democracy Prep Charter 고등학교에서 공연을 하였다. 공연에서 ‘청성곡’을 시작으로 ‘경기 아리랑,’ 판소리 춘향전 중 ‘사랑가’ 등 다양한 곡을 선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청소년들은 흥겨운 한국 장단의 재미를 맛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공연 후 학생들에게 한국의 다양한 전통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서예와 사물놀이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Optimized-DSC00813 (3).JPG

                                           ▲Democracy Prep Charter 고등학교 앞에서 공연후 팀원들, 선생님과, 학생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코리아 아유 레디> 팀원들과 만나 보았다.

 

 <코리아 아유 레디>팀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문현우 (팀장):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조기유학을 했는데 그 때 느꼈던 고국에 대한 추억들과 그리움이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리랑이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었고, 지금의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에 아리랑과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기 위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구성된 팀입니다.

 

멤버들이 각자 다른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구성 되었나요?

신유진: 팀장님께서는 프로그램 기획을 할 때 국악과 서예를 전공하는 친구들을 합류시켜 보자는 의견을 내셨습니다. 먼저 서울대 국악과 사무실에 연락을 해 국악 전공자를 추천해 달라고 하셨어요. 김동국(장구) 씨의 경우는 ‘국악 거리공연’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어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정화 (서예) 씨는 팀장님과 대학 동문으로, 학교신문을 통해 ‘해를 품은 달’ 이라는 사극드라마에서 대필 활동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연락하여 같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왜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고 싶나요?

박준영: ‘아리랑’은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민요이고, 우리 모두가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한국 내에 있는 분들보다 해외에 있는 분들이 아리랑을 더 좋아하시는 거 같습니다. 외국으로 이민 오신 분들이 아리랑을 듣고 한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외국에서는 아리랑에 대한 기획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아리랑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 것 같아서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국내에 있는 분들이 저희를 보면서 ‘아리랑이 대한민국의 정말 위대한 문화유산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4개월 동안 15개 나라를 방문하셨는데, 그 나라들을 선정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문현우: 몇몇 나라는 특별히 선정했고, 그 외 나라들은 세계일주항공권에 맞춰서 일정을 짰습니다.  사실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더욱 아리랑을 홍보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르단이나 이집트는 한국에서 가기 어려운 곳인데 때마침 세계일주항공권에 요르단 항공사가 가입되어 있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 그 나라 사람들이 한국어와 고사성어, 속담을 수첩에 적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아, 여기 오기를 참 잘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나라들을 방문하기 전에 연락을 많이 했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주로 학교를 방문하셨는데 어떻게 해당 학교와 연락이 되었나요?

문현우: 한국어와 관련된 학교들을 조사해서 그 학교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다녔습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아인샴스 대학교에는 한국어과가 있는데 거기 계신 한국어 선생님들과 연락을 해서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한국을 전혀 모르는 분들께 찾아가지 않고, 한국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찾아갔는지 의문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가 길거리 공연을 할 때 처음으로 한국 문화를 접하는 분들이 저희에게 ‘한국문화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해요?’ 라고 물어보시면, 한국문화원이나 한국과 관련이 있는 곳을 추천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저희가 한국어를 배우는 분들이나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을 찾아가면 그 가족들과 지인들에게까지 대한민국이 더 많이 전파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는 어디인가요?

문현우: 홍콩을 시작으로 유럽, 중동, 남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정화: 처음 <코리아 아유 레디> 팀은 6명이 아니었어요. 시작은 문현우 씨, 김동국 씨, 대금 전공하시는 분 그리고 저, 4명이 프로모션으로서 베트남 호치민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미리 점검해보는 교육활동으로 다녀왔어요. 이 프로그램이 잘 될지 안 될지 시범으로 갔었는데, 베트남에서 반응이 너무나 좋았고 계획이 대성공을 거두어서 지금 현재 6명의 팀 멤버들과 세계일주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많은 나라를 다녀오셨는데, 제일 반응이 뜨거웠거나 좋은 인상을 받았던 나라는 어디였나요?

이정화: 이집트와 칠레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이집트는 한국을 정말 좋아해요. 저희가 가기 전부터 K-Pop이나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어요. 저희가 가니까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많은 분들이 저희 행사에 참여해 주시고, 저희를 가족처럼 챙겨 주셨어요. 하지만 칠레의 경우는 K-pop 말고는 한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이 ‘아리랑’ 이었어요. 우리 전통 음악을 처음 접했는데도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마지막 날에는 쿠에카(Cueca: 칠레 전통 민속춤)로 ‘아리랑’을 부르면서 같이 춤도 췄어요. 그때 마침 정민(대금) 씨 생일이어서 노래도 불러 주고, 깜짝 생일파티까지 해 주셔서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신유진: 전 이집트가 제일 인상 깊었어요. 저희가 방문한 아인샴스 대학교 건물이 무척 높았어요. 저희는 건물 앞 한가운데서 공연을 하였는데 한국어과 학생들은 저희 앞에서 공연을 보면서 응원을 해주었고, 학교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한국에 관심이 있든 없든 수업 끝나고 모두 모여서 6층 건물에서 저희를 다 내려다 보았어요. 공연 후 학교 전체가 떠나갈 듯 정말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어요. 그리고 칠레도 인상적이었는데 저희가 공연을 마치자 기립박수를 쳐 주고, 쿠에카 민속춤을 함께 추어 더 흥이 났었어요. 칠레 학생들은 정말 밝았어요. 제가 그때 감기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정말 가족처럼 잘 챙겨주었어요.

 

여러 나라들을 돌면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힘이 드셨을 텐데 제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신유진: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는 태극기나 악기를 소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복조차 못 입게 했어요. 피라미드 앞이 종종 시위가 일어나는 곳이라 정부에서 튀는 복장은 안 된다고 해서 처음에는 한복을 못 입었지만, 저희는 끝까지 한복을 고집해 마침내 당당히 한복 차림으로 피라미드에 입성했었어요. 

 

이정화: 저는 개인적으로 인도가 제일 힘들었어요. 저희가 그곳에 방문했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제가 워낙 여름을 잘 타서요. 또한 인도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팀장님은 물갈이도 하고 피까지 토했어요. 그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온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견뎌냈죠. 처음에 인도에서 힘든 경험으로 시작을 하니까 그 다음 나라들은 적응하는 데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서예와 사물놀이 교실이 있었는데 어떤 수업이 인기가 많았나요?

김정민: 아무래도 처음 공연을 봤을 때는 장구가 소리도 크고, 동작이 많으니까 학생들이 신기해 했어요. 그런데 서예 수업에서도 본인이 쓴 작품을 남길 수 있고, 또한 정화 씨가 직접 ‘아리랑’을 써서 모두에게 선물로 주니까 두 교실 모두 인기가 만점이었어요.

 

문현우: 만약 학생들이 하나에만 치중하면 쉽게 질릴 수가 있는데 서예수업도 해 보고, 사물놀이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을 통해 흥미를 느끼게 했어요.  


Optimized-DSC00835.JPG

                                           ▲ 서예시간을 즐기고 있는 Democracy Charter Prep 선생님과 학생들 


제일 뿌듯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박준영: 뉴욕 첫째 날이었어요. 퀸즈에 있는 뉴욕 어린이 민속축제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어떤 할머니와 인터뷰를 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인터뷰를 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였답니다. 그 할머니께서는 저희를 너무나 반가워 하시면서 “공연이 너무나 좋았다, 또 어떻게 뉴욕에서 아리랑과 같은 우리나라 국악을 들을 수 있는지…”하고 감격에 벅차서 숨이 차신 듯 말씀을 잘 못하셨어요. 공연 후 저희에게 친할머니처럼 용돈을 주시면서 “가서 솜사탕 사 먹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희가 세계 일주하면서 외국인들에게 ‘아리랑’을 알리지만, 외국 곳곳에 계신 한인 분들이 우리 국악을 들으면서 감동하시는 모습이 전 정말 보기 좋아요.

 

이제 긴 여정이 끝나가고 마지막 나라인 미국으로 오신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문현우: <비빔밥 유랑단>을 보면서 왜 미국에서만 오래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했는데, 미국에 직접 오니까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뉴욕에 와보니 우리나라를 알려줄 수 있는 공간도 많고, 한국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뉴욕에 살고 계신 한인동포 분들이 저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외국이지만 모국 같은 느낌이 들어요. 또다시 뉴욕에 와서 ‘아리랑’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오고 싶습니다. 

 

이정화: 저는 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며 1.5세, 2세 한인들을 보며 많은 반성을 했어요. 아르헨티나에 1.5세와 2세로 구성된 ‘누리패’라는 사물놀이 팀이 있어요. 그 분들은 K-pop외에 한국 전통 문화에 접할 기회가 없어 장구 같은 경우는 처음에 박스를 구해서 장구 연습을 했었대요. 저희가 갔을 때 시간이 없어서 동구(장구 담당) 씨가 밤에 한 시간밖에 가르칠 수 없었는데 늦은 시간에 저희를 찾아 오셔서 열정적으로 배우셨어요. 그런 분들을 지켜 보면서 아리랑을 알리며 저 분들에게 지금 칭찬을 받고 있는 제 자신이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끔씩 한복 입기 귀찮을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 분들을 통해서 ‘아, 나도 저 분들처럼 적극적으로 올바른 생각으로 실천하자’ 하고 다짐을 하게 됐어요. 누리패 멤버들은2세, 3세 동포인데도 ‘한국’이라는 말보다 계속 ‘우리나라’라고 표현하셨고, 나는 ‘한국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 분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살면서 멀리 떨어진 조국에 대해 쉽게 잊을 수 있는데도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반성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앞으로 <코리아 아유 레디>의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김정민: 돌아가서 117일 동안 찍은 영상들을 준영(영상 담당) 씨가 하나로 정리 해주실 거고, 기회가 된다면 저희가 일기장에 기록했던 내용들을 책으로 낼 예정이고, 한국에서도 몇 지역을 다니면서 ‘아리랑’을 좀 더 많이 알리려고 합니다.

 

문현우: <코리아 아유 레디>팀 1기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이제 시작인 거 같습니다. 앞으로 기획을 더 해서 2기로 다시 출발하고 싶습니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문현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저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그리고 문화에 종사하는 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기획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회 지원자가 되고 싶어요.

 

이정화: 일단 10년 뒤에도 글을 계속 쓰고 싶어요. 얼른 졸업을 해서 서예를 전공하는 친구들에게도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서예가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몰랐어요. 한국에서는 대체로 서예를 지루해 하는 편인데 해외에서의 서예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후배들에게 멘토처럼 알려주고 싶고, 또 같이 활동도 하고 싶어요.

 

신유진: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국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고 싶어요. 세계 일주를 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전공을 더 열심히 해서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김정민: 사람들에게 국악의 맛을 많이 알리고 싶은 것이 저의 과제라 생각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 경험에서 느꼈던 좋은 점들을 한국에서도 나누고 싶어요. 

 

박준영: 저는 원래 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어요. 해외로 나와 보니까 우리나라가 정말 위대한 문화를 갖고 있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역시 한국이 최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한국에 돌아가면 앞으로 ‘탈’에 대해 다큐를 만들 생각이에요. 미래에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김동국: 저는 음악가보다는 음악 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이 여행 중에 예술이라는 게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악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겠지만, 제가 보는 진정한 음악가는 음악을 기술로 배워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여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 음악을 기반으로 한 월드 뮤직에 욕심을 갖고 있어요. 해외에 어떻게 국악을 알리고 싶은지 생각을 해봤을 때 무작정 선생님에게서 배운 기술로 들려주는 건 그 겉모습만 전달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 제 나름의 음악표현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한국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게 중요해요. 잘못하면 다른 음악과 접목 했을 때 한국음악이 다른 음악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나오고 있는 퓨전 국악도 대부분 그런 경우이죠. 탱고, 안디스 레게, 라틴 음악을 보면 나라마다 그 전통의 뚝심이 있고, 그 주변에 다른 음악의 요소들이 붙어서 새로운 장르가 생긴 게 월드 음악이에요.

전 한국 전통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싶어요. 대부분 대중가요들이 서양의 리듬과 비트를 따서 잠깐의 일회성 인기를 모으지만, 전통음악을 클래식 음악처럼 많은 세대를 거쳐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코리아 아유 레디> 팀은 아리랑에 대한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낯선 이국 땅을 마다 않는 도전 정신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한국을 사랑하는 이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진심은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그들을 직접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전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코리아 아유 레디> 팀원들 또한 아리랑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인들을 보면서 세계 속 한국의 새로운 가능성을 몸으로 체험하고, 117일의 긴 여정에서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며 그들은 스스로 더욱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이 되었다. 해외 공연을 마치며 겸손하게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성취감과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하는 그들에게서 희망찬 한국의 미래가 보였다. 그들이 앞으로 더욱 큰 꿈들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세계 속 한국의 미래를 펼쳐 나갈 한국 젊은이들에게 본이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