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 <을화> 연출가 이승규

- 사명감 보다는 일종의 관습과 같은 것

 

· 김혜리

사진 · 극단 검은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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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2일과 3, 이틀 동안 뉴욕소재 퀸즈 씨어터 인 더 파크(Queens Theater in the Park)에서 연극 <을화>가 공연되었다. 김동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극단 검은돌의 첫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극단 검은돌의 연출가 이승규 씨를 만나 <을화>을 연출하게 된 계기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을화> 라는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000년도에 인천시립극장에서 예술 감독을 그만두고 미국에 온 후에는 나를 돌아볼 시간을 주로 가졌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동문 후배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이 모임을 계속 갖기 시작하면서 같이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스톤스프 라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어떤 사람이 공원에 빈 냄비를 가져간다. 작은 돌 다섯 개를 가지고 아주 맛있는 스프를 끓이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스프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재료들을 말한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재료를 내놓고 결국 주도한 사람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스프를 끓여서 다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돌이라는 것을 매개체로 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다함께 즐길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빗대어 보자면 흔히 좋은 일,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일이라는 게 돈은 많이 들어가지만 그다지 이익이 남지 않기 때문에 투자할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보람 있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사람들 속에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도네이션이 이루어지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연극을 하고. 그래서 남는 힘을 다 보태는 거다. 모두의 도움으로 이 작품을 구상하고 실제로 무대로 올릴 수 있었다.

 

 13년 동안의 공백 후 다시 연출을 하게 된 소감은 어떠한지?


 거기에서 느낀 점은 연출에 대한 단절감이나 제 자신 속에 있던 예술적 흐름이 끊겼다는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했던 것처럼 생생하게 모든 것이 살아있었다. 단지 계속하지 않으면 인적자원이 어디 있는지, 연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연극을 준비하는 도중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다. 그 때마다 가까스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뉴욕 일대에 창하는 분, 한국 무용하는 분들, 태평소와 피리를 불 수 있는 분들이 속한 취타대가 있었다. 이런 분들이 뉴욕에 있는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이러한 분들을 알게 되고 같이 작품을 하게 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런 가치 있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많이 표현을 해야 하는데 혼자 떨어져 있으면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이러한 연극을 통해서 이런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앞의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극을 준비하면서 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재정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이 문제는 걱정하지 않고 연극 연습만 했다. 대학 동문 뿐 아니라 뉴욕 한국문화원의 도움이 있었고 동포 사회 각 분야에서 도네이션이 들어오거나 혹은 표를 일부러 많이 사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재정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는 동포 사회에서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많은 연극들이 존재하지만 내 것이 아닌 이상 여전히 동포들에게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한국 사람들을 위한 한국문화가 여기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이 공백을 누군가가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김동리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김동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작가다. 올해가 김동리 탄생 100년이라는 의미도 물론 있고 또 한국의 중요한 작가의 작품을 파고 들어가서 연극으로 올리고 싶었다. 여기에서 하는 한국적인 것에는 향수를 달래줄 수 있는 가벼운 정도의 것들이 많다. 깊이 있는 전통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이러한 점에서 연극 <을화>는 본국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다.

 

 외국인들을 염두 해서 연출한 부분들이 있는가?

 

 사실은 이 소재를 고른 것 자체가 그것을 염두 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늘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독교 국가인 다른 나라에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유입될 때에는 저항이 있다. 그 저항을 사회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도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그들의 부모에게 알려줄 때 젊은 세대들이 우위에 있게 된다. 기계는 배우면 되지만 가치관 문제에서는 젊은 세대들과 윗세대들 사이에 심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태껏 믿고 살아온 것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일이 한국 역사에서 여러 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일본이 침략했을 때 등 여러 번 일어났다. 가정이 편할 날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을화>라는 작품은 한국에 기독교 문화가 처음 유입될 때 가정에서 일어났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외국 사람들도 이러한 점에서 흥미를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올리는 작품은 김동리 선생이 20대에 썼던 글을 다시 60대에 수정한 것이다. 한국문학사에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추가 되었지만 2시간 내로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넣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어머니 을화와 아들 사이의 인간적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갈등의 내용에 집중했다. 비교적 선이 뚜렷한 연극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이 연극을 보더라도 자막은 없지만 영어로 각 막마다 줄거리로 적어놓은 것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다. 자막은 오히려 연극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경주 사투리가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도 심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배우들이 사투리로 연기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나?


 경주 사투리는 사투리 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한다. 그래도 배우들이 그렇게 고생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배우들은 언어에 대해서 비교적 섬세하기 때문에 다들 금방 습득했다. 더해서 말하자면 사투리가 어렵다고 해서 표준어로 고쳐서 한다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다. 사투리는 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에 그 지역의 독특한 정감이 들어가 있다. 경주라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투리가 필요하다.

 

 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가장 뿌듯하다고 느꼈던 점은 무엇인가?

 

 내가 여기서 연극을 해봤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기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의 문화적인, 창조적인 힘이 이 연극을 계기로 집결되었다는 사실에 기쁘고 뿌듯하다. 문화적 사막과 같이 보여 지는 동포사회에 창조적인 힘이 집결된다는 것은 곧 잠재되어 있던 문화적 힘을 끌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포 생활에도 문화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또 모든 민족이 모여 있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한국의 훌륭한 면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50, 100년 후를 내다봤을 때 한국적인 것들이 후세들에게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명감 보다는 일종의 관습 같은 것이다. 접함으로써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이런 것들을 잊으면 안 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은 소용이 없다. 이 작품 특징 중 하나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사투리를 구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극 중 *“우스바라라는 대사가 있는데 외국말을 듣는 것만 같았다. 요즘에는 쓰지 않는 말 같아 경주 출신의 지인에게 물어보니 현재에도 잘 쓰는 말이라고 한다. 경주에 살면서 이 말을 쓰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또 사투리에 대한 재미도 느꼈다면 외국말처럼 들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후세에게 우리의 것들을 전할 때에도 어떤 사명감이나 논리로 전하는 것 보다는 한국적인 것들이 재밌는 것이라는 점을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계속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한국적인 것들에 노출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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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을화>라는 작품이 공연된 점은 후세를 위해 묘목 나무를 심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관습은 한자 익숙할 관()과 익힐 습() 자를 쓴다. 한자의 뜻을 통해 풀어보자면 여러 번 겪어서 서툴지 않고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지키며 해나가고 있는 미국의 한인 예술가들의 더 풍성한 활동으로 낯설지 않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것이 후세에게 자주 경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더불어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극단 검은돌>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우스바라”: 경상도 경주 사투리로 우습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