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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lementary Opposites_4 pannels, 60”x192”, ink and color on mulberry paper, 2012

현대미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많은 재단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 추상표현미술의 선구자 잭슨 폴록과 그의 부인 리 크래스너가 뛰어난 기량을 갖춘 아티스트들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Pollock-Krasner Foundation에서 수여하는 Pollock-Krasner Foundation grants는 매년 약 100여명 정도의 아티스트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는 유명한 그랜트다. 이 그랜트의 2014-2015년도 수상자 명단 가운데에는 낯익은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해 10 29일부터 12 17일까지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별 기획 그룹전 The Lineage of Vision: Progress through Persistence 에서 소개되었던 15명의 여성 작가 중 한 명인 안성민 작가다. 2013년에는 알재단에서 개최한 미술공모전에서도 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안성민 작가와 직접 만나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먼저 수상 축하드립니다. 워낙 유명한 재단인만큼 이번 그랜트 수상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A: 사실 Pollock-Krasner Foundation에서 받는 그랜트는 이번이 두 번째에요. 첫 그랜트는 2003년에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한지를 주재료로 작업하기는 했지만, 작품 개념과 보여주는 방법이 미니멀리즘적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그랜트는 한국적 요소가 강한 민화를 출발점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인들은 이미 민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제 작품을 볼 때 전통민화를 재해석한 현대미술로 받아들이지만, 미국인들은 민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제 작품을 동양 전통 미술이라고 인식하거든요. 그리고 추상, 개념, 미니멀리즘 아트가 보편적인 미국 현대미술계의 시각에서 보면, 제 작품의 경우 손으로 섬세하게 작업하며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그림이라고 느끼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민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미국의 저명한 재단 그랜트를 받은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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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ft: Room for Meditation, 6x6x6 each lantern, water color on mulberry paper, 2001

                     Right: Peony Bouquet_8pannels, 40”x208”, ink and color on mulberry paper, 2012


Q: 민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사실 처음 민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8년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민화 수업을 하면서부터에요. 미국에 오기 전에 제가 한국에서 공부했을 당시,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는 수묵화의 전통이 강했어요. 하지만 채색화의 기본과 실전은 학교에서 이미 마친 상태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화를 강좌하면서 한층 더 단련되고, 거기에 제 생각과 철학이 가미되면서 점차적으로 현재의 제 작품으로 진화했다고 할수 있어요. 마침 그 즈음에 이전 작품 스타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고, 제 생활에 절실하게 중요하던 부분이 사라지고 그 부분을 대신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아이의 양육과 같은- 이 생기면서 삶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던 것도 있었고요. 따라서 이전 작품의 주제들은 제게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졌고, 더불어 제가 구상하고 있던 작업과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작품의 미래상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본 이후로는 더욱더 제가 하던 형식의 작업을 계속 추구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었죠. 그런 와중에 민화라는 분야를 접하면서 그동안 고민했던 부분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면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2009-2011년에 걸쳐 약 2년 동안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면서 민화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 넣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점차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되었죠. 또한 일상생활에서 새롭게 깨닫기 시작한 것들, 예를 들면 딸과의 소소한 교감과 같은, 작지만 신선한 발견들을 그림에 더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으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Q: 작업 철학은 무엇이며, 그것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처음에는 민화를 가볍게 시작했지만, 점차 내용과 형식 면에서 한층 더 깊이 있고 철학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어요. 작품을 평가할 때, 물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러한 단편적인 심미성을 넘어서서 다른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나만의 관심 분야에 집중하다가, 아이가 생긴 이후로 모든 관심사가 아이로 바뀌고, 그 전환점이 다음에는 아이의 친구들, 그 친구의 가족들, 그렇게 점차 파생되어 나가다가 결국에는 모든 타인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다른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고, 그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확대된 것이죠.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졌고, 이제는 나만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심도있는 주제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현재는 제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와 교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작가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자 목표에요. 나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정원>*에 출품한 <상처와 기억, 죽음 그리고 승화에 관하여>는 이런 저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라 정이 많이 가요.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개념과 함께 모란을 주제로 한 제 작품들 가운데 함축적인 의미를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모란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소재의 표현법과 시각적 요소들은 성취, 상실, 좌절, 고통, 승화라는 가치와 연결되고, 이는 곧 현대인들이 삶에서 겪게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암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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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와 기억, 죽음 그리고 승화에 관하여>, 2014

  

Q: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힘든 점, 그리고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먼저 뉴욕에는 한국화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다는 면에서는 장점이 있어요. 덕분에 동양화를 전공한 저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아시아 소사이어티, 퀸즈 미술관 등의 유수의 기관들에서 워크샵을 진행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하지만 현지인들이 보기에 제 작품들은 특이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생소하기도 하고, 공감대를 찾기가 어려워서인지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해요. 그리고, 제가 전통적인 기법을 쓰기 때문에, 그림 완성 후 뉴욕에서 배접을 맡길 만한 제대로 된 표구사를 찾지 못할 때는 정말 난감해요. 한국화를 전공한 학생들이 거의 없어 인턴이나 어시스턴트를 구해야할 때도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Q: 아티스트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작업을 하면서 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전통이에요. 한국 전통 미술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로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도 동시에 글로벌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저의 목표에요. 어렵고 현학적이고 난해한 그들만의 작품이 아닌, 쉽고 친근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작품들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Q: 사람들에게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유명한 평론가에게 극찬받는 작품도 아니고, 유명 경매사에서 고가에 팔리는 작품도 아니에요. 누군가 그림을 보고 감정이 복받쳐 올라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오래도록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과 교감하듯이 제 그림을 통해 관객과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는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고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통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 시대에, 뉴욕이라는 다문화가 공존하는 이 곳에서, 자신만의 색채로 한국 전통미의 철학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그녀가 진정 자랑스러웠다. 그녀의 희망대로 문화의 장벽을 넘어 많은 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향후 그녀의 행보가 기대된다.

 

 

 

*  2014.10.21부터  2015.04.26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

* 모든 이미지는 작가의 허가를 받고 사용하였으며, 저작권은 작가 안성민씨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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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ft: Peony through viewfinder_together, 51x33, ink and color on mulberry paper, 2012

    Right: Miraculous drawer_water fall_01, 36”x20”, ink and color on mulberry pap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