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stic Memory 10022 전시 리뷰

글/사진 조은아


네덜란드 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고흐 (Vincent van Gogh).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 경매에서 최고가로 거래되어 지고 있기도 하다. 작품이 이렇게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반고흐 에게는 왜 비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까?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는 정신적 질환을 앓았고,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에 반고흐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 졌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을 때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더라면, 그의 작품을 여기 저기 소개 해 줄 수 있는 중계자가 있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 질 수 있었을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한식의 세계화와 더불어 작년에는 가수 PSY가 한류의 바람을 더욱 세게 불러 일으키는데 크게 한 몫 했다. 그 이후로 전 세계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때 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세찬 바람은 한국의 미술 시장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이곳 뉴욕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젊은 한인 작가들은 살인적인 물가와 렌트비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뛰어난 예술가들과 매일 같이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한다. 열심히만 해서 되는 것이면 차라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 혼자의 노력으로 뉴욕의 주류 미술계에 진출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 보다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뉴욕한국문화원과 자메이카 아트센터 (Jamaica Center for Art & Learning)가 공동으로 한인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JCAL-KCSNY Workspace Artist 2012-2013을 공모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선발 된 설치 미술가 장홍선 작가가 뉴욕에서 힘들게 작업하고 있는 4명의 동료 한인 작가들과 함께 기회를 나눔으로써 총 5명의 작가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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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stic Memory 전시장 입구


지난 5월 29일 오후 6시 장홍선, 신형섭, 홍범, Sun You (유선미), 그리고 성유삼 작가가 JCAL-KCSNY Workspace Artist 2012-2013 프로그램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다시 한번 갤러리 코리아에 모였다. 지난 일년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인 Plastic Memory 10022  는 이 전시의 제목 만큼이나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Plastic Memory 10022라고 붙여진 제목은 현재 참여하고 있는 5명의 작가 모두가 Plastic 류 라고 구분 되어지는 스펀지, 비닐, 그리고 다양한 합성수지를 사용했다는 점, 작품속에 작가들의 Memory가 담겨져있다는 점, 그리고 두 단어를 합쳤을 때 (Plastic Memory) 생겨나는 다시 이전의 형태로 돌아가다라는 뜻까지도 이번 전시에 딱 들어 맞는다. 맨 뒤에 붙은 10022 라는 뉴욕한국문화원 우편번호는 Plastic Memory 전시가 열리는 지역의 우편번호를 적용하기 때문에 가변적이다. 예를 들어, 전시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면 Plastic Memory 110290이 되는 것이다. 전시 제목으로만 미루어 봐도 이번 프로젝트는 단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앞으로도 지속성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는, 전시 기간 중간에 전시의 형태가 바뀐다는 점이다.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는 여느 갤러리나 미술관과 다를 것 없이 작품만 갤러리 공간에 전시가 되어진다. 하지만 그 이후 6월 7일부터 7월 19일까지 한달 조금 넘는 기간에는 갤러리 공간이 작가들의 레지던시 스튜디오 개념으로 탈바꿈 하여, 보다 활기차고 소통과 공유가 가득한 공간이 될 것이다. 


큐레이터나 컬렉터 또는 평론가가 아닌 일반 관람객이 뉴욕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위치해 있는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이 기간 동안에는 평소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던 대중들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항상 결과물만 전시 되어지는 전시와는 다르게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이나 작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보고, 작가들과의 대화, 공유, 그리고 소통의 기회가 주어지는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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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홍선, Fluorescent Prism, 2013


상호간의 공유는 작가와 관객들 사이에서만이 아닌 현재 참여한 5명의 작가들 사이에도 항상 일어난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공모를 통해 발탁된 장홍선 작가에게 주어진 개인전 기회를 4명의 동료와 나누어 전시를 그룹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개인전이라는 것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일텐데 말이다. 이에 장홍선 작가는 개인전을 하면 자기 만족은 충족 시킬 수 있었겠지만,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더욱 더 큰 가능성이 생긴다. 어떻게 보면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상대이지만,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회를 나눈다면 다같이 함께 커 갈 수 있고, 그로 인해 따라오는 더 값진 기회가 많을 것이다. 라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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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섭, Breath, 2013                                                                             성유삼, Wave, 2013


이건 다른 작가들도 생각이 같았다. 신형섭 작가와 성유삼 작가도 이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경제적으로도 물론 많은 도움이 되지만, 세계 거장들의 전시가 하루가 멀다 하게 오픈을 하는 뉴욕에서 같이 그룹을 지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하는 것이 한인 작가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이들은 힘들 때 일수록 같이 작업을 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니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작가들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있는 병사들과 같이 느껴졌다. 저 너머에 보이는 블록버스터급 세계 거장들의 전시에 맞서 싸워야 하는 그런 병사들 말이다. 6.25전쟁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와닿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병사들의 존재만으로 전쟁에서 승리가 가능할까? 승리를 위해서는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도록 무기와 식량등을 보급해 줄 수 있는 경제적인 후원과, 훌륭한 전략을 전수해 주는 지략가 역시 필요하다. 미술 세계에 비유하자면 이들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 해주며, 대중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다리역할을 하는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그리고 문화 기관들이다.


한인 1.5세인 Sun You 작가는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마치고 뉴욕으로 와 힘들게 작업하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 이주해 왔거나 이곳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작가를 위해서도 도와 줄 수 있는 문화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작가들이 상업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닌 순수 예술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관들 말이다. 홍범 작가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현지 미국인 또는 유럽인들과 많이 다른 한국 감성이 담긴 그의 작업을 외국인들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홍범 작가 만이 가지고 있는 한인으로서의 독특함을 뉴욕 미술 시장에 자연스럽게 연착륙을 시켜 주지 못한 한국 큐레이터나 기관들의 부재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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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 Unseen, 2013                                                 Sun You, Garden Horse, 2013


허나, 시작이 반 이라고 하지 않았나.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의 조희성 큐레이터는 이번 Plastic Memory 10022를 시작으로 앞으로 기회가 닿을때마다 다른 기관과의 협력을 지속 할 것은 물론이고, 그 무엇보다 한인 작가를 지원하는 의미에서 한인 작가만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에 르네상스 (Renaissance)라는 문화부흥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이(The Medici) 재능있는 작가들을 아낌없이 후원 해 주었기 때문이고, 20세기 미국 뉴욕이 프랑스 파리로 부터 예술의 중심지 라는 타이틀을 빼앗아 올 수 있었던 계기는 페기 구겐하임 (Peggy Guggenheim) 과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와 같이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경제적인 후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의 재능을 꿰뚫어 보는 안목, 그들을 적절하게 띄워주는 전략, 그리고 따뜻한 관심이 함께 어우러 졌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이다. 


이제는 한국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부터 달려져야 하지 않을까? 일반 관객으로서 한국인 작가의 재능과 가능성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해 주는 것은 물론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 해 줄 수 있는 전문 큐레이터 양성과 다양한 문화기관의 도움이 절실한 때인 것 같다. 첫 단추는 한국문화원과 자메이카 아트센터가 훌륭하게 끼워 넣었다. 앞으로는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단추 뿐만이 아닌 더욱더 많은 그리고 다양한 기관에서 Plastic Memory 시리즈 전시소식과 다른 한인 작가의 전시소식이 들리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