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부터 11월 21일까지 The Korea Society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Lea Sneider 컬렉션 전시회에 다녀왔다. 1974년 주한 미국 대사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간 Sneider 여사는 한국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민화 연구의 대부격으로 불리는 조자용 선생을 통해 한국 민화를 접하게 되었다. Sneider 여사는 1983년에 당시 브룩클린 박물관의 오리엔탈 미술부 큐레이터 Robert Moes와 함께 서양에서는 최초로 민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 민속 예술품을 소개하는 전시회 Auspicious Spirits: Korean Folk Paintings and Related Objects를 기획하였으며, 그 전시 도록 서문에 조자용 선생의 민화에 대한 열정이 그녀의 한국 미술 관심에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고 있다.   


Sneider 여사가 민화, 도자기, 목공예, 조각품 등 한국 민속 예술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다방면에서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반영하듯, 현재 The Korea Society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민예품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제작된 시대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공개되는 Sneider 여사의 개인 소장품들 중에는 앞서 언급한 1983년 브룩클린 박물관에서 선보였던 작품도 몇몇 포함되어 있다. 비록 전시 공간이 협소하고 작품의 수 또한 많지는 않지만, 매우 흥미로운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관람객의 관심이 높았던 작품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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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 Shrine Painting “Gammo Yoejaedo”, 19th Century, ink and colors on paper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은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소홀히 할 수 없는 의무이자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양반이나 재력가 집안에서는 방을 따로 마련하거나 별당을 짓고 제사를 위한 가구 등을 갖추어 조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사용했으나, 대부분의 가난한 서민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감모여재도 (感慕如在圖)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사당이 없는 집이나,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가거나 유배를 갈 경우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이동식 사당 역할을 하였다. 작품의 도상을 살펴보면, 잘 꾸며진 사당 건물과 제사상, 촛불, 위패, 음식, 꽃 등이 있으며 위패의 비어있는 공간에는 매번 제사를 지낼 때마다 조상들의 이름을 쓴 종이를 탈부착하였을 것이다.  ‘감모여재’라는 말은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이 나타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와 신분에 상관 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조상을 위한 제를 올리며 이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우리 선조들의 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사를 형식적이고 진부한 옛 것으로 여기며 기피하려고만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이 그림이 다시 한 번 제사라는 의식의 본연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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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Choe Yeong, early 20th century, ink and colors on silk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맞서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고 애썼던 최영 장군은 무속 세계에서는 군사들을 보호하는 신령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서 최영 장군과 그를 에워싸고 있는 4명의 병사들이 모두 삼지창을 들고 있는데, 이 삼지창은 굿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무당들의 도구이다. 최영 장군의 바로 밑에서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과 모자를 통해 유추해 볼 때, 그의 신분이 상급 일본 해군 사관임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입고 있는 군복은 20세기 초 일본의 해군복이며, 허리에 차고 있는 칼 역시 해군 사관의 것이다. 특히 모자의 중앙에 새겨진 16개 이파리의 국화꽃 역시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상징이었다. 이 그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Korea Art Society의 Robert Turley는 이 그림이 일본의 탄압에 저항하는 의미로 굿에 쓰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즉, 고려의 위대한 무사 최영 장군과 그의 막강한 군사들이 일본에 대항하여 우리 민족을 지켜준다는 해석이다. 그에 반해 Auspicious Spirits: Korean Folk Paintings and Related Objects의 전시도록에서는 이 그림은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일본 해군 사관이 의뢰하거나 혹은 그를 위한 선물용으로 제작된 그림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같은 그림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림을 감상하는 또다른 즐거움인 것 같다. 위에서 소개한 두 점의 그림 이외에도 볼만한 작품들이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직접 가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 작품들이 담고 있는 메세지에 대해 각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IMG_4848.JPG Kkodu (Funerary Figures), 19th century, painted wood


* 이 글의 내용은 전시도록 Auspicious Spirits: Korean Folk Paintings and Related Objects을 참고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