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Wave | Young Soon Kim Dance Company

여름의 끝자락, 어느덧 가을이 물씬 느껴지는 뉴욕에서는 여름 축제들의 막바지가 한창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여름축제 ‘SUMMER STAGE(썸머 스테이지)’는 뉴욕시의 자랑인 수 많은 공원에서 음악, 댄스,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축제다. 1987, 센트럴파크에서 시작된 작은 무료공연이 계기가 되어 그 후 매년 여름마다 공원에서 공연을 즐기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메인 스테이지인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뉴욕시의 다섯 구역(맨하탄,브루클린,브롱스,퀸즈,스테이튼 아일랜드)으로 확장되어 18곳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공연기획이 되었다고 한다. 올해는 6 6일을 시작으로 8 30일까지 계속 된 이 축제에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공연이 있다. 바로 김영순 댄스 컴퍼니, WHITE WAVE HERE NOW SO LONG이라는 공연이다.

이 공연은 올해 썸머 스테이지에 초청되어 8 17일 차이나 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스트 리버 파크에서 본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썸머 스테이지 기간 동안 일반적으로 2~3개정도의 각기 다른 공연을 하는데 이날은 화이트 웨이브의 공연이 마지막 공연으로 올려졌다. 무대 바로 앞에 이스트 리버가 보이고 맑은 하늘과 제법 가을 바람이 부는 선선한 공원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색다른 흥분을 가져왔다. 공연장에는 7시 전부터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8시 첫 번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유명한 안무가와 그의 학생들이 나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공연장이 공원이라서 어수선하고 집중이 안될 거라 생각했는데 해가 지면서 자동으로 조명효과를 가져왔고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무료공연임을 무색하게 하는 신사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딱딱한 공연장의 모습과도 많이 달랐는데, 음식이나 음료를 먹는다던 지 사진을 찍는다던 지 자유롭게 호응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 웨이브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렵지 않고 나눠준 안내책자만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개인에게 쉽게 적용될 수 있는삶과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비가 올 듯 말 듯 해 걱정했던 날씨도 오히려 전화위복 격으로 선선한 바람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적한 여름 밤에 적당히 진지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좋은 공연이었다. 둥둥둥둥 울려 퍼지던 북소리와 물소리가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내내 귀에서 맴돌았다. 관객들의 대부분은 외국인이었지만 왠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을 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공연을 만들기 까지 김영순 예술감독님의 노력과 화이트 웨이브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WHITE WAVE

1988년에 설립되어 지금은 10명의 뛰어난 댄서들로 구성된 화이트 웨이브 김영순 무용단은 뉴욕 현대 무용계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손꼽힌다. 지구의 자연스러운 리듬과 인간 정신의 기본 정수와 조화를 이루는 창조작업을 모토로 김영순은 미국과 동아시아 등의 주요 공연장 및 그리고 미 전역 등에 걸쳐 초청공연을 하였다. 또한 지난 십 년 동안, 김영순 예술감독은 세 개의 페스티벌(덤보댄스페스티벌, 웨이브라이징시리즈, 쿨뉴욕댄스페스티벌)을 화이트 웨이브 John Ryan 극장에서 연중 개최해왔다. 2007년 발표된 에서 김영순 예술감독은 현대무용과 에어리얼 안무를 접목시켜 혁신적인 작품을 개발하였다. 김영순의 숯 시리즈(2008-10)는 본 극장에서 매년 빛나는 작품으로 소개되었다. 2010년 덤보댄스페스티벌, 김영순은So Long for Now(2010-11)4 섹션을 페스티벌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리미어 함과 동시에 브루클린의 Fulton Ferry Landing에서 처음으로 무용작품을 선보이는 역사를 남겼다. 이후, 작품을 향상시켜 2010 웨이브라이징시리즈, 2011 쿨뉴욕댄스페스티벌에서 공연하였고, 2011 덤보댄스페스티벌에서는 새로운 마지막 섹션을 추가하여 완성된So Long for Now를 선보였다.[출처.화이트웨이브댄스컴퍼니]

HERE NOW SO LONG

201111The Museum of Arts and Design에서 기획하는 뮤지엄 공연 시리즈에 초청받아 공연 한 작품으로 비디오 영상, 어쿠스틱 및 전자기타의 연주 그리고 댄스가 어우러지는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Collaborator들과 함께 창작되었고 넘치는 에너지와 새롭게 도전한 신선한 춤사위로 현대무용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지금을 살고 있는 인간의 가슴과 머리는 늘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서부터 오며 미래의 올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서부터 온다는 생각에서부터 비롯됐다. 현대무용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 작품 곳곳에는 김영순 무용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담은 몇 가지 물건들을 통해 그 의미를 쉽게 전달한다. 대표적으로 HERE NOW를 나타내는 신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공간, 이 시간에 일어나는 많은 충격적인 뉴스들을 나타내고,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화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올 희망을 나타내며 화분이 등장하며 새로운 미래와 생명력을 나타낸다. [출처.화이트웨이브댄스컴퍼니]

 

 

 

(1)   기획취재: 김영순 예술감독님과의 인터뷰

 

     지난 8 11일 떠오르는 예술가들의 도시 브루클린 덤보의 한 공연장에서는 썸머 페스티벌에 올린 초청공연을 위한 준비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바로 김영순 댄스 컴퍼니인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이였다. 올해 썸머스테이지에 초청되어 here now so long이라는 작품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전 오랜만의 내한 공연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오자마자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길어진 여름밤을 축제로 즐기는 사람들과 반대로 연습과 페스티벌 준비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연습실을 찾아가봤다. 쉼없이 이러한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김영순 예술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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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들의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는 김영순 예술감독

 

“우리 무용단 춤 잘 추죠? 저는 참 행운아인 것 같아요”

 

본인의 무용수들을 지켜보는 눈이 매서우면서도 따뜻하다. 연습 때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실제 공연처럼 리허설을 할 때는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긴채 지켜봐 주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무용수는 15년이라고 했다. 현대무용은 잘 접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가까이서 관람을 한 적도 없었던 나는 모든게 그저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춤이 아니라 몸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2시간여 동안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웠다. 그러자 나는 어떻게 이 무용단이 만들어 진 것인지 궁금해졌다

Q. 무용 단원들의 국적이 참 다양한 것 같아요. 무용단원을 뽑는 오디션을 정기적으로 보시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단원들을 뽑으시는지 건가요?

A. 단원들을 정기적으로 모집하지는 않아요. 필요할 때 오디션을 통해 뽑습니다. 특별히 어떤 국가, 어떤 사람으로 제한을 두지도 않죠. 다만 제가 보고자 하는 건그릇이 되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잘못 되어 있으면 제가 아무리 담으려고 해도 담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담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그들의 캐릭터와 열정을 보려고 합니다. 캐릭터는 그들의 무용에 나타나는 매력이라고 생각을 해요. 오디션을 보다 보면 겉은 화려하고 예쁘지만 혼이 없이 텅 빈 사람들이 있어요. 본인의 춤에 얼마만큼의 열정을 담고 혼을 담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Q.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한 특별한 오디션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A. 직접 짠 안무를 가르쳐 주고 얼마나 빨리, 잘 본인의 것으로 습득하는가를 보려고 합니다. 저는 무용가들이 춤을 출 때 그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할지 알아요. 그것을 고쳤을 때 얼마만큼 달라질지도 알고요.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해요. 본인의 부족한 부분에서조차 자기만 고집하면 발전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우리무용단이 원하는 무용수가 될 수도 없지요. 지금 조금 잘한다고 해도 저는 미래를 보고 뽑으려고 해요.

 

Q. 안무를 직접 짜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도 감독님이 직접 안무를 고안하신건지, 만들어진 안무는 어떻게 가르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A.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 작품은 내가 모든 움직임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직접 무용단원들에게 가르치려고 해요. 나는 영어를 한마디 뗄수 없을때부터 안무를 가르치는 일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순간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 머뭇거려지는 순간이 있었죠. 그런데 한 단원이 이런 말을 했어요. ‘Youngsoon, You don’t have to explain anything, your body explain everything’ 그게 제가 안무가로서도 꾸준히 활동하는 이유죠. 하지만 같은 것을 배워도 무용수들에 따라 동작이 달라져요. 하지만 그걸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어떤 부분은 여러 무용수들이 똑같이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그들의 다름도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댄서에게 움직임은 소통의 기구이니까요. 안무가로서 그런 것들 것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죠.

Q. 무용가로 활동하다가 예술감독이 되셨는데 무대와 작품을 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많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설명해주신다면?

A. 직접 춤을 출 때는 육체적으로 엄청난 움직임을 소화하느라 내 모든 감각은 내 몸에 집중돼있었어요. 나는 아직도 댄서로서 춤을 추지만 점점 무용단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안무가로서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춤에 대한생각이 훨씬 명확해졌죠. 나는 춤을 오랫동안 춰왔기 때문에 신체적인 인지 능력이 매우 발달해있다는 건 알았지만 춤을 전혀 추지 않을 때는 지식적인 인지 능력이 더 강해진 다는 건 얼마 전에야 알게 됐어요. 그런 내 능력이 무용 감독으로서 활동하는데 가장 기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한 페스티벌을 주관하다 보니 매년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다양한 무용단들의 100개가 넘는 공연을 보죠. 그를 통해서도 내 사고방식과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아졌고 공연을 하면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명확해졌어요. 물론 나는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하지만 지금 시간도 매우 소중해요.

 

Q. 현대 무용이 대중문화 속에 깊게 자리잡았다고 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고 많은 페스티벌과 공연들도 단발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인데요. 하지만 12년동안 꾸준히 3개의 무용축제를 기획하시고 끊임없이 롱런할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A. 자랑처럼 들리는데 하늘과 부모님께 참 감사한 것 중 하나가 탁월한 디렉팅 능력이에요. 물론 몸으로 해야 되는 거라 본인의 노력이 우선이 되야 하지만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개인이 가진 장점을 이끌어주는 티칭 능력도 좋은 무용수를 만드는데 너무 중요하거든요. 저는 무용수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네가 우리 무용단에 들어온다면 돈은 많이 못 주지만 하나 보증할 수 있는 것은 너의 무용이 완전히 변할 수 있다.’라고요. 실제로 6개월이면 완전히 변해요. 그래서 우리 무용단에 있다가 더 좋은 무용단으로 발탁되어 가는 경우도 많고요. 그럴 때면 마음이 아프죠.(웃음) 나에게도 그런 분들이 있는데 내가 댄서로 활동하던 80년대 초반 제니퍼 멀로가 그런 말을 했어요. ‘넌 최고의 세계에서 유명한 라이브 댄서가 될 거라고내가 정말 프로댄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의혹 속에 있던 자그마한 동양여자에게 너무 큰 힘이 되는 말이었죠.

또 다른 이유로는 나의 모토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매번 공연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공연이 지금껏 내가 해왔던 그 어떤 공연보다도 잘해야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지금까지 저와 제 무용단은 정말 여러 곳에서 수많은 공연을 해왔기 때문이죠. 그런 마음가짐이 나의 공연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Q. 원조 한류열풍의 개척자라는 평을 듣고 계신다. 한류가 한창이지만 가끔은 한국의 문화를 다른 나라에 알린다기보다는 그저 한국사람이 그곳의 문화를 따라 하는 식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외람된 질문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올리신 작품들이 정말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계시다고 생각하시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어떤 작품에 담으신 건지 알고 싶어요.

A.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문화의 어떤 부분을 추출해서 그걸 무용 속에 집어넣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초창기에 몇몇 한국적인 몇몇 작품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성공적인 한류를 위한 도구이지는 않았어요. 한국적인 문화를 도입해서 내 무용 속에 넣는 것도 내 무용의 하나의 방법이지만 계산하지 않아요. 그저 나 자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그것에는 한국의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담겨질 것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이라는 작품의 한 섹션은 완전히 한국적인 것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 계기는 바로 저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만든 것이에요. 어머니가 임신을 하셨는데 배가 고파 밤에 항아리의 동치미를 꺼내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만든 장면인데 무대 위에 한국의 항아리가 실제로 등장하기도 하죠. 항아리를 통해 남녀의 위치가 달랐을 때의 한국 여성들의 한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저는 이것이 정확한 한류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가가 30여년 동안 태극기를 달고 전세계 이곳 저곳에 한국을 알리는데 열심히 뛰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디를 가든, 어떤 형태의 공연을 하든 [김영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해왔고요.

 

Q.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한대수씨의 음악이나 아까 말하신 것 처럼 어떤 부분은 전형적인 한국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품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없이 외국인들의 호응을 받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A. 내가 프로 댄서가 되겠다고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 솔직히 두려웠어요. 한국에서야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춤을 잘 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키도 크고 아름다운 서양 댄서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죠. 정말 지독하게 연습했어요. 자다가도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하루에 14시간씩 강행군을 하며 연습을 거듭하고 나니까 나의 춤이 완전히 변하더라고요. 그것이에요. 나는 그것을승화가 된다라고 표현하는데 춤이 승화가 되면 키가 크고 아름답고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82년도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에서 춤을 췄었는데 그때 찰스 라인하트(주최자)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오 마이 갓, 내 눈이 당신만을 쫓아다니느라 다른 무용수들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사람에게 그런 평을 받았다는 게 놀랍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해요. 크리스틴 요시다 라는 여자 댄서가 있는데 몸매는 정말 댄서로서 매력적인 몸이 아니죠. 하지만 무대에서 춤을 출 때는 불똥이 튀는듯해요. 그런 댄서를 만드는 게 내 목표죠. 그런 노력이 내 무용단의 장점이고 사랑을 받는 이유이고요. 내가 내 무용단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익숙해져서,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춤을 추지 마라. 모든 순간 순간 젖 먹던 힘을 다해 너의 모든 것을 넣어서 춤을 춰라. 그러면 관객들은 네가 준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Q. 예술가들은 본인의 작품에 항상 새로운 영감을 필요로 한다고 들었어요. 6살때부터 끝임 없이

춤을 추셨고 1988년 무용단을 창단, 2001년부터는 매년 몇 개의 페스티벌을 주최하시면서 누구

보다 바쁘신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영감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요?

 

A.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감은 내가 찾는 게 아니라 나한테 와요. 내 모든 감각은 예술적으로 깨어있죠. 내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심지어 잠을 자는 시간에도. 결국 24시간 내 머리가 안무구상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몰두하고 있는 거에요. 항상 그런 씨름을 계속하지만 무엇을 할까 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에서 씨름이 오는 것 같아요. 빠듯한 일정이 압박을 주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춤을 추고 안무를 짤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느껴요. 그런 모습의 내가 너무 행복해요. 살아있는 것 같아요. 안무를 짜거나 작품을 구상할 때 나는 나를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놓고 꼭 해야 될 것만 마음에 두려고 해요. 내가 작년에 here now로 뮤지움의 공연 시리즈에 초청을 받아 작품을 시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140석밖에 안 되는 작은 공연장은 이 공연을 하기에 너무 작았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떠오른 것이 무대 뿐 아니라 그 공연장을 모두 무대로 써야 겠다는 생각이었죠. 무대 첫 줄을 모두 비우고 객석 사이와 땅바닥을 무대처럼 사용했고 공연장의 양 측면과 무대 뒤에 프로젝트로 비디오를 틀어 공연을 했었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공연장의 총책임자도 지금껏 누구도 이렇게 한 사람이 없었다며 감탄하더라고요. 이렇게 예술적 영감은 내 노력에 의해서보단 자연스럽게 나에게 떠오르는 것 같아요.

 

Q. 감독님이 35년전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오셨을 때와는 확실히 한국 무용가들이 이 곳에서 활동하고 유학을 하는 것에 있어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만들어놓으신 발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 많은 현대무용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나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이번 6월에 한국으로 한 달이여 동안 공연을 갔어요. 그때 서울과 광주에서 무용가를 꿈꾸는 중.고등학생과 대학팀, 프로무용수들 180명 정도를 대상으로 워크샵을 했죠. 한참 진행하다가 음악을 멈추고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했어요. 그 아이들의 춤을 보는데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 제한적이었어요. 춤을 출 때 호흡은 매우 중요한데 숨을 안 쉬면서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깊은 숨을 10번을 쉬고 더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했지요. 그건 한국에서뿐 아니라 내가 무용수에게 어떤 부분은 소리를 지르며 추라고 해요. 살아있는 댄스를 추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이 오픈이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한 동작 속에서도 살아있음이 그 에너지가 끊임없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무한이 뻗어내고 표현하려고 하세요.

 

Q. 끝으로 앞으로 감독님의 향후 계획과 미국에서의 활동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A.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글쎄요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12년동안 여러 개의 페스티벌을 주최해왔고 무용단을 꾸리고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해왔고 하고 있지만 메모나 플랜을 적어두지 않아요. 모두 머릿속에 해요. 그런 것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청사진처럼 들어와요. 메모로 적어보려고도 시도도 했었지만 그렇게 다 써놓다 보면 머리가 멈추는 듯한 느낌이에요. 물론 우리 무용단의 플랜은 있지만 나의 계획은 정리하고 계획하려고 애쓰지 않아요 오히려 머리를 비우려고 하죠. 그럼 그 비워진 공간에 새로운 계획과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돈 없이도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건 바로 그런 영감들이에요. 그러니 그런 것들이 자리할 공간을 만드는 게 저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김영순 감독님에 대해 내가 예상했던 모든 게 깨어진 기분이었다. 질문을 할수록 인터뷰가 아닌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고 신선한 대답은 한여름에 더위를 가셔주고 있었다. 6살때부터 춤을 춰오셨으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춤을 사랑하고 즐기시는 모습이 부러웠고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바쁜 일정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면서도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이 그 동안의 내공을 보여주는 듯했다. 9 27일부터 30일까지는 덤보 댄스 페스티벌과 10 17일부터 11 4일까지 열릴 웨이브 라이지 시리즈까지, 그녀의 바쁜 행보가 기대된다.